국민학교(초등학교라는 말은 이성적으로 나올 지언 정. 감정적으로는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 6학년 때 어머니가 처음으로 해태전자에서 나온 슈퍼콤(패밀리 계열)이라는 게임기를 사주셨다.

어렸을 때 부터 사고 싶은게 있으면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울어제낀지라 슈퍼콤 역시 나의 지겨운 조름에 못이겨 사주셨는데 그 때부터 나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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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콤2 사진. 내가 샀던 슈퍼콤1 이미지는 찾을 수 없었다. – 출처:루리웹

그동안 쭉 장안동에서 살다가 1년 동안 화곡동에서 살고 다시 장안동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한 일은 근처에 게임팩 바꾸는 곳을 찾는 것이었다. 다행이 집 근처에서 컴퓨터 수리점이 있었는데 거기서 게임팩 대여 및 교환을 해주었다. 당시 동급의 팩을 교환하는 데는 2000원이었고 그 이상의 단가를 가진 팩과 교환하기 위해서는 차액을 얹어주어야 했다. 어린시절 2000원이라는 돈 자체도 나에게는 큰돈이었고 그래서 한번 팩을 바꾸게 되면 되도록 오래오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선택하였다. 그래서  섭렵했던 게임 장르는 롤플레잉, 시뮬레이션 등등의 말 그대로 시간노가다성이 다분한 것들이 주를 이룰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게임팩을 바꿔오던 어느날 그 가게에는 더 이상 내가 해보지 못한 게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주인아져씨께 물었다.

“아져씨. 다른 게임이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되요?”
“동대문에 가보렴”

태어난 곳이 서울이었고 동쪽 끝 장안동과 서쪽 끝 화곡동에서 살아는 봤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점영역에 불과했고 동대문이라는 곳은 당시에 내겐 신천지와 다름이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그것은 일종의 도전과도 같았다.

다행히 당시 장안동에는 혁성운수라는 버스회사가 있었다. 53번, 54번의 버스를 운행하던 회사였고 그 버스노선내에 동대문이 있었다. 혹시 몰라 아버지, 어머니께 어떻게 가야되는지 여러차례를 물은 후에 드디어 동대문에 홀로 다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려 아무리 둘러봐도 게임팩을 바꿀 수 있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먼 놈의 평화로운 시장은 그렇게도 많던지. 동평화 먼평화..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름처럼 평화롭지는 않았다. 아주머니 아져씨들의 손들에는 옷밖에 안들려 있었고 모두들 시끌 벅적하게 지나가는 손님에게 물건을 파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어린 꼬마는 한동안 패닉상태에 빠져 방황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일.
난 반드시 내 손에 들려있는 이 게임팩들을 바꿔야만 했다.

굳은 결심을 하고 근처에 그닥 평화스럽지 못한 인상의 아져씨께 길을 물었다.

“아져씨 여기 근처에 팩바꾸는 곳이 어디예요?”
“응? 팩이 뭐니..?”
“그럼 근처에 게임기 같은 거 파는 곳 없어요?”
“흠.. 그럼 저쪽으로 가보려무나”
“네..”

아져씨가 말해준 대로 일단 쭉 걸었다.
지금은 철거되어 있는 고가길 아래로 쭉 펼치진 여러 상점들.
헌책을 파는 곳. 운동기구를 파는 곳. 신발을 파는 곳 등을 쭉 지나니 건널목이 있었고 그곳을 건너니 길을 따라 아파트가 쭉 늘어서 있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물건들을 파는 구나..’

아파트란 곳은 주로 사람이 살기만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유독 거기 1층에서는 물건을 팔았다. 그것도 아주 여러가지 물건을 말이다. 어른들만 보는 빨간책. 빨간 비디오. 그리고 어떤 아져씨는 TV를 틀어두고 손에는 이상한 물건을 들고 지나가는 어른들을 유혹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물건.. ㅎㅎ 뻔하다.

결국 그렇게 조금 더 가보니 중고 전자제품을 파는 곳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드디어 내가 그토록 찾아 헤메이던 팩들이 쫙늘어서 있었다. 얼마나 기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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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상의 빨간 점의 위치일 것이다..

골목을 꺾어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가 약간 씩 벗겨진 두분의 아져씨를 볼 수 있었다.
한분은 지금 생각해도 세월의 무게로 눌리신 듯한 느낌의 인상이었고 한분은 안경을 쓰시고 좀 선해보이는 인상. 당연히 나는 그 선해보이는 분께 먼저 말을 걸었다.

“아져씨. 이 팩이랑 저 팩이라 바꿀라면 얼마들어요?”
“흠.. 2000원 내렴”
“그럼 저거는요..?”
“저건 너가 가지고 있는 팩보다 많이 비싸. 돈이 많이 필요할 께다”
“네..”

하지만 동급팩의 맞교환도 너무나 즐거웠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동네에선 볼 수 없었던 당시 유일한 게임잡지였던 게임월드에서만 보아왔던 수 많은 게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번 그곳을 찾은 후로는 일주일에 한번씩 꾸준히 게임팩을 바꾸기 위해 그곳에 들렸고 나이가 들어갈 수록 내 교통수단도 버스에서 자전거로 바뀌어 갔다. 또한 나름 팩교환에도 도가 트여 일본에서 나온 유명하지 않은 팩들을 싼값에 매입해 그 게임을 모르는 다른 곳에서 비싼 팩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나중에는 꽤 많은 팩들을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시간은 흘러가 어느덧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이제 순수 일본어로 된 게임도 어느정도는 내용을 파악해가며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관문 앞에서는 그렇게 좋아하던 게임도 어쩔 수 없이 접게 되었다. 그래도 그렇게 게임을 통해 공부해 두었던 일본어를 통해 배운 한자들은 내가 대학공부를 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고 나중에는 영풍문고에서 일본참고서를 통해 공부가 가능한 경지까지 이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이제 그렇게 애타도록 찾아 헤메이던 게임들은 인터넷으로 클릭만 하면 다운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고 마음만 먹으면 어떤 게임이던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나중에 늙으면 게임만하고 지내야지 하고 생각하던 나도 다른 수 많은 취미가 생기게 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게임에 목매지 않는다. 내가 항상 지니고 다니는 PDA에도 당시에 즐겼던 여러가지 게임들이 들어있지만 가끔 추억을 되세기거나 다른 사람을 위한 접대용에 불과하다.

그리고 얼마전
다시 청계천으로 가보았다.

항상 그늘을 드리우던 고가의 위용은 이제 사라진체 밝은 햇빛이 평화롭다는 그 먼평화 시장들을 비춰주고 있고 길 한가운데는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당시에도 언제 부서질까 항상 불안했던 삼일아파트들은 달랑 2층까지만 남겨진체로 짤려져 나갔고 뭐가 뭔지 헤깔렸던 길거리 간판들은 통일된 양식으로 보기 좋게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 했던 것처럼 다시 골목을 꺾어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그 골목은 거기 그대로 있었다.

꺾자마자 보였던 길다란 튀김만두 파는 곳도 그대로였고 여러가지 동으로 만든 물건들을 파는 곳도 여전히 반짝반짝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은 추억이 담긴 곳이라고 그냥 두진 않는다.
어릴적 그 크게 보였던 아져씨 들은 어느센가 흰머리에 노년이 된 분도 있었고 당시 나랑 같은 또래의 아이들은 이제 성년이 되어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 자리에서 물건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항상 다니던 그곳..

전에 보았던 수심이 가득한 아져씨가 아직도 계셨다. 여전히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시다. 가판대에는 아주 예전에 보았던 슈퍼패미콤 팩들이 꼬질꼬질 때가 타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그 장사를 하고 계셨다. 그래도 때가 때인지라 이제는 다른 물건들도 같이 두고 파시는 구나..

그리고 그 옆가게
하지만 그곳에 더 이상 그 아져씨는 계시질 않았다.
가판대는 장막으로 덮혀진체 햐얗게 먼지가 쌓여있었고 어릴적 그 조그만 가게를 둘러쌌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그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왠지..
슬펐다.

비록 커버렸지만 어릴적 추억이 담긴 곳들은 그대로 있어주길 바랐는데..
다시 만나면 정말 반가운 얼굴로 인사하고 싶었는데..
가슴 한 쪽이 괜히 쓰라려왔다.
아쉬운 나머지 그냥 그 곳을 멀뚱멀뚱 처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아져씨. 뭐 필요해요?”
“아뇨.. 아녜요.. 아직도 장사하시네요?”

우리 수심이 가득한 아져씨시다. 이 분은 나를 못알아 보시는 구나.. 그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건네드렸다.

그렇게 다시 어릴적 추억이 눈에 밟히는 길을 걸었다.
삼일아파트 길을 걷고 건널목을 건너 근처 학교도 한번 보고 다시 버스를 탄다.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정말 강산이 변했구나..
헤헤..

이름도 모르는 그 아져씨께 여기서라도 문안인사 드리고 싶다.
부디 건강하시고 무슨일을 하시던 잘 되시길 빕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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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Comments

  1.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서글퍼지는 건 기억하고픈 옛것이 사라져가기 때문인 것 같네요. Nes님의 어린 시절에 말로 표현 못할 마음의 풍요와 경험을 줬던 그곳도 시간을 이길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한번쯤 꺼내볼 수 있는 추억으로나마 남아 있다는 것도 어쩌면 Nes님의 행복이지 싶습니다. ^^;

    1.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아직 많은 나이가 아닌지라 이런 느낌이 많이 들지는 않지만 앞으로 점점 더 느낄것은 분명해 보이네요. 말씀대로 이런게 추억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습니다.^^

  2. 저도 저 곳이 가끔 생각하고 그러는 곳이지요..
    숭신초등학교을 다니면서 친구들과 도깨비시장(게임팩 사신곳 시장 이름입니다.)에
    가서 물건들 구경한 기억..동묘에서 술래잡기한 기억… 하~~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저와 같은 곳의 기억을 공유하신다니 반갑습니다.
      도깨비시장이라고도 하는 군요.
      저 역시 고맙습니다~^^

  3.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애틋하고 아련한 추억이…

    따뜻한 분 같아요.

    1. ^^;
      별로 따뜻하진 않구요.
      그냥 옛날 생각하니까 한쪽 가슴이 쫌 그래서 끄적인것 뿐입니다.
      종종 들려주세요.

  4. 청계천 인근 동네에서 몇년을 살면서 중학교 시절 도깨비시장 종종 가곤 했지만..

    요즘은 가구 싶어도 못가고 있는데…이 글 덕분에 다시 한번 가고 싶어졌네요…^^

    그때 저한테 들러붙어서 야동CD팔던 아저씨는 아직 계신지 모르겠네…ㅎㅎ

    가서 덕분에 새로운 세게를 알게 됐다구 말씀드려야 할텐데…;;;

    쪼록 글 잘읽었습니다…^^

    1. 제가 한창 가던 때는 비디오 밖에 없었는데 행인님때는 CD도 있었네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5. 정말 소중한 추억 잘 읽고 갑니다..저도 역시 어릴적 추억때문에…아직도 고전게임을 가끔 즐기는데.. 저랑 비슷한 경험을 하신것 같네요… 전 어릴때 파이널판타지 3 , 드래곤퀘스트 4 를 하면서 방학기간동안 했던 기억이 나네요.. 수퍼패미컴은..당시에 정말 해보고 싶은 게임들이 많았지만 어릴적 즐겨보진 못했어요..몇년전에 어릴적 꼭 해보고 싶었던 몇가지 게임들을 다 해봤지만..^^

    1. 정말.. 해보고 싶은 건 꼭 해봐야 아쉬움이 덜 할 듯 합니다.
      저도 당시에 못해본 게임들 에뮬로 나마 해서 원을 풀었거든요.

  6. 정말 소중한 추억이시겠네요. 전 그렇게 늙지않아(16세) 패미콤을 잘 모르지만 대략 현재의 플스 정도겠죠?? 그것보다도 학생인 저에겐 게임으로 일본어 공부가 됬다는 것이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일본어 읽기 귀찮아서 공략을 뒤지는 제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군요

    1. 아직 16살이시면 창창하십니다.
      저 역시 중학교 2학년때 부터 일본어 공부시작했습니다.

      게임을 하는 오로지 즐거움을 위한 것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혹시 같은 시간에 조금 더 투자하시면 일본어 및 한자공부에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나 한자는 배워두면 앞으로 공부하시거나 살아가시는데 두고두고 도움이 됩니다. 단순하게 명칭만 들어도 나중에는 한자 뜻까지 유추해 낼수 있고 후에는 그 의미가 단숨에 뇌리에 박히는 기분 좋은 느낌을 경험 하실 수 있을 겁니다.

  7. 세운상가에서 벼르고 벼르던 AIWA워크맨을 사들고 청계천에 들린 날, 메가드라이브를 보고는 걸음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슈퍼시노비라는 게임이 데모로 걸려있었는데 한참을 들여다 보다가 워크맨과 게임기를 물물교환하고 말았다는 ^^;;
    얼마전에 청계천에 나갔을 때 들려보니 지금은 주인이 바뀌었더군요.
    이제는 게임기들도 좋아지고 가지 수도 많아졌습니다만, 8비트~16비트 시절만큼 게임에 몰두할 나이가 지났는지, 하려한 비주얼의 최신 게임을 봐도 두근거리거나 하지 않습니다.
    아주 가끔, 게임관련 골목들을 지날 때 마다 그 시절의 아련한 향수를 느낄 뿐이죠 ㅎㅎ

    1. 저랑 비슷하시네요.
      저도 그 때는 세운상가에서 여러물건을 샀었어요.
      몇달 지난 일본 게임잡지도 사고 그랬는데 갑자기 아픈기억이 생각나네요.

      많이들 그러잖아요.
      세운상가에서 비디오 살려다가 아져씨가 좋은거 있다고 해서 샀는데 틀어보면 동물의 왕국이더라.. 이런거. 저 역시 그랬거든요. 당시에는 엄청난 금액인 2만5000원을 그래서 날렸죠..^^;

  8. 안녕하세요 혹시 그 가게 어딘지 저한테 얘기좀 해주시면 안됄까요?? NES님 저도 한번 들르고 싶어져서요..ㅋ

    1. 점으로 찍어둔 곳일껍니다.
      거의 정확할꺼구요.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런지 잘 모르겠어요ㅋ

      하지만 오차가 있어도 가게 하나 정도이니 위치는 금방 확인 가능하실 겁니다. 다만… 그 아저씨께서 지금까지도 계시는지는 모르겠어요..

    1. 본문 지도상에 빨간 점으로 표시된 곳입니다.
      정확한 주소는 저도 잘 몰라요ㅋ

  9. 글 잘봤습니다 ^^
    저또한 오늘 다녀 왔네요 아직 한가게 있구요 (대머리 아저씨) ㅋ
    지도상에는 좀 오차가 있네요 성동공고 옆 골목이 맞는것 같네요^^
    “만물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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