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은 원래 궁터가 아니었다. 태조의 계비였던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의 무덤인 정릉(貞陵)이 있던 곳이다. 태종 때 이 능이
옮겨지고 그 자리에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집을 지어 살았다. 이후 임진왜란 때 경복궁을 비롯해 대부분의 궁궐들이 타버려 의주(義州)까지 피난
갔다가 되돌아온 선조가 거처할 왕궁이 없자, 왕실의 개인 저택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이곳을 임시 행궁(行宮)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선조가 1608년 2월에 지금의 즉조당에서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덕수궁은 왕궁으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광해군은 즉위 직후
덕수궁을 경운궁으로 이름을 바꾸고 잠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되돌아 오게 된다. 그러나 광해군은 인목대비와 반목을 하면서 선조의
계비(繼妃)인 인목대비만을 남겨두고 창덕궁으로 옮기고,1618년에는 인목대비를 유폐시키면서 경운궁을 ‘서궁(西宮)’이라 낮추어 부르게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인조가 즉조당에서 즉위하면서 왕궁은 이곳에서 완전히 창덕궁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거쳐
덕수궁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고종 말년이다. 명성황후 민씨가 시해되자 고종이 아관파천하여 러시아 공관옆에 있던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다시 왕궁으로 사용되었다. 이 때를 전후하여 많은 건물들이 지어졌는데, 석조전 ․ 정관헌 같은 서양식건물도 이때
지어졌다.

1908년 순종이 즉위하면서 창덕궁으로 옮겨가고 이곳 경운궁에 홀로 남게 된 고종의 장수를 비는 뜻에서 ‘덕수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덕수궁의 건물 배치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궁의 중심인 정전과 침전이 있는 부분, 선원전이 있는 부분, 그리고
서양식 건물이 있는 부분이다.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을 들어서거나 후문을 통해서 들어서거나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이 함녕전과
덕홍전이다.

함녕전은 고종의 침전이었고, 서쪽에 있는 덕홍전(德弘殿)은 임금이 평상시에 사용하며 귀빈을 접견하던 편전(便殿)이었다.

함녕전앞을 지나면 중화문이 나오고 그 안쪽으로 궁의 정전인 중화전이 있다. 중화전은 고종 광무 6년(1902) 건립되었다. 이 건물은
처음 중층의 장대한 규모로 세워진 건물로, 2층으로 조성된 월대 위에 정면 5칸, 측면 4칸의 규모였다. 그러나 1904년 화재 뒤 재건되면서
단층 건물로 축소 되었다. 본래는 중화전을 둘러싸고 길게 행랑이 연결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어느하나 남아있질 않다. 중화문 위쪽에는 광명문이라는
현판이 붙은 정각이 있다. 흥천사 동종과 자격루등이 그 아래에 보전되어 있는데… 이 건물도 본래는 함녕전의 정문이었던 것을 일제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서 전시각으로 사용하고 있다.

 

중화전 왼쪽에는 덕수궁에서 가장 잘 알려진 석조전이 있다. 영국인에 의해 1900년부터
10년동안에 걸쳐 지어진 석조전은 1층은 신하들의 거실, 2층은 황제의 접견실과 홀, 3층은 황제와 황후의 침실과 응접실로 사용되었으며, 해방
후에는 국립박물관 등으로도 사용되었다. 또한 1945년 광복 직후에는 이곳에서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려 한반도 문제가 논의되기도 한 역사의
현장이다. 분수대가 있는 석조전 앞의 정원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정원으로, 중앙의 분수대는 1937년에 조성되었다.

정전의 뒤편이자
석조전의 오른쪽에는 준명당과 즉조당이 나란히 붙어있고, 그 아래쪽으로 석어당이 단아한 모습으로 서 있다. 이중에서도 즉조당은 역사가 가장 오래된
건물로 광해군과 순종이 즉위식을 치룬 존엄한 공간이다. 또한 1897년 고종이 경운궁으로 옮겨온 뒤 1902년 중화전이 건립될 때까지 정전으로
사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즉조당과 붙어 있는 준명당은 1897년에 새로 지은 내전(內殿)의 하나로 한때 고종이 거처하며 외국사신을 접견하던
곳이다.

중화전뒤쪽이자 즉조당의 오른쪽에 있는 석어당은 덕수궁에서 유일하게 2층구조로 된 건물이다. 그럼에도 단청을 하지 않아 마치
잘지어진 여념집마냥 가장 소박하고 친근감을 준다.

한때 인목대비가 유폐되었던 곳이며, 역대 국왕들이 임진왜란을 회상하며 선조(宣祖)를
추모하던 곳이기도 하다. 석어당을 돌아 후원으로 나가면 서양식 정자인 정관헌이 있다. 고종이 다과를 들고 음악을 감상하던 곳으로, 한때는
태조·고종·순종의 영정을 봉안하기도 하였다.

원래 경운궁의 정문은 덕수궁 남쪽 중화문 건너편에 있던 인화문(仁化門)이었다.
1904년 화재로 1906년 중화전 등을 재건하면서 동쪽의 대안문(大安門)을 대한문(大漢門)으로 이름을 고치고 궁의 정문으로 삼았다.

문의처관리사무소 TEL : 02-771-9949

부가정보

관람코스

덕수궁은 대한문이나 후문 어디를 통해 들어가던 가장먼저 함녕전을 만난다. 함녕전과 덕홍전을 거치면
중화문.. 중화문 위쪽의 광명당을 보고 휴게소에 쉬었다가 석조전앞의 분수대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중화전에 오르면 된다. 중화전 뒤로 나가면
석어당과 준명당 즉조당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즉조당과 준명당 연결통로 아래를 지나면 뒤쪽 산책로와 후원이 나오고 그길을 따라 내려오면 정관헌
앞으로 나오게 된다.정관헌 바로 옆이 후문이다.

볼거리

덕수궁에서는 매일 조선시대 궁굴을 지키던 수문장 교대의식을 재현한다. 매일 14:30 에
15~20분간 치뤄지는 이 행사는 대한문 앞에서 열린다. 데이트코스 덕수궁 돌담길(덕수궁 입구에서 경향신문사로 이어지는 900여 m)을 따라
걷다 보면 전통예술 공연장 정동극장이 있다. 정동길 보도에는 은행나무를 비롯해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살구나무가 심어져 아늑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갈림길에 있는 로터리 분수대, 곳곳의 벤치로 정동길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덕수궁에서 광화문쪽으로 5분 거리에 있는 영국대사관 옆
성공회 성당도 고풍스런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관람시간

– 3월∼10월 : 평일(오전 9시∼오후 6시), 토·일·공휴일(오전 9시∼오후
7시)
– 11월∼2월 : 오전 9시∼오후 5시 30분
○ 휴 관 일 : 매주 월요일


관람요금

– 개인 : 소인(7~18세) : 500 원
/ 대인(19~64세) : 1,000원
– 단체 : 대인(30인 이상) : 800원 / 소인(10인 이상) : 400원

※ 무료입장 : 6세
이하, 65세 이상, 국가유공자 및 그 배우자, 장애인


주변여행지간 거리

<->경복궁:5분
<->창덕궁:10분
<->남대문:도보5분
<->서울역사박물관:도보10분

출처 : 야후 거기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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