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다.
집에 밥도 없고 먹을만한 반찬도 없어서 밖에 나가서 먹기로 했다.

시간이 9시가 다 되가기에 자주가던 김밥 Heaven도 문을 닫은 상태이고 중국집 또한 영업 끝났단다. 조금 더 걸어가면 해장국을 잘하는 집이 하나 있긴한데 거기까지 가기에는 배고픔이 너무나 심각하네..

그래서 24시간 운영하는 xx김밥 집으로 발걸음을 돌려본다.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 먹고 싶은 생각에 육개장을 시키고 밥먹으면서 볼 신문이 있나 가게안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바라보면서 서 있다가 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주방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냉동실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크기로 따지면 비닐봉지에 포장되어 있는 900g의 고추장 정도이고 상태는 냉동실에서 꺼냈으므로 꽝꽝 얼어있었다.

분식집에서 바로 못 만드는 음식들을 저런식으로 공수해서 요리해 파는 것이라고는 대충 짐작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저렇게 꽝꽝 얼어있는 육개장을 꺼내는 것을 보니 왠지 기분이 심히 찝찝해진다.

과연 어떻게 나올까?
자주가던 김밥천국에서 육개장을 먹을 때는 재료들이 나름대로 싱싱하고 살아있었는데 말야..

잠시 후 반찬이 먼저 나왔다.
오이김치, 배추김치, 깍두기.
완전히 풀밭이네..

그런데 반찬들을 자세히 보니 유독 배추김치가 눈에 띄었다.
다른 반찬들은 반찬통에서 방금 접시에 담은 것 같이 물기를 머금어 형광등 조명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으나 배추김치에서는 그러한 빛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딱 보니 전에 왔던 손님에게 내놓은 배추김치를 그대로 내놓은 것. 대충 두어시간은 된 것 같았다.

신문을 뒤적거리면서 김치를 뺀 나머지 반찬을 끄적대니 육개장이 나왔다.
역시나.. 냉동한걸 해동한 것에 불과한 육개장에서는 숙주나물의 신선함도 뽀득뽀득하게 고기씹히는 느낌도 전혀 나질 않았다. 벌건 육개장 국물 위에는 다른 곳에서 먹는 육개장보다 훨씬 많은 기름들이 막을 이루고 있었고 맛을 보니 거의 머.. 미원을 쏟아 부은 듯한 느끼함이 입안을 가득채워 바로 물 한잔을 들이켰다.

두 분식집 모두 가격은 3500원으로 같은데..  어디에서 먹는가에 따라서 한 곳에서는 신선한 재료를 이용한 맛있는 육개장을 맛 볼 수 있고 다른 한 곳에서는 재활용 반찬에 냉동 육개장을 꾸역꾸역 먹어야 한다.

예전에 사귀던 여자친구와 분식집에서 냉동돈까스를 5000원에 먹은 이후로 분식집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하나 더 추가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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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한국에 가서 가장 무딪힌 문제가 식당 문제였습니다. 정말 웬만한 식당들은 다 Nes님이 겪으신 비밀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더군요. 그후 얼마 지나 서울사정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단골이 생겨 적응이 되었습니다. 근데 그래도 맘이 놓이질 않는 한구석이 있었습니다. 큰누나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지 1년반.

    빠리에서 서울시 상수도 국장인가 하는 분이 왔을때 통역을 한 적이 있는데 서울은 물이 제일 문제더군요. 뭐 자세한 내용을 얘기하기도 뭐하지만 언젠가는 밝힐 생각입니다. 수많은 환자들의 문제가 단지 개인의 잘못이나,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급적 3째누나에게는 돈이 들고 귀찮더라도 가스가 들어간 페리에를 꼭 사먹으라고 했지요… 근데 한국에선 비싸더군요! 무겁기도 하고.. 어쨌든 큰문제입니다. 국민 건강을 우습게 여기는 정치가들이 한심하게 느껴지는군요… 우울한 얘깁니다….

    1. 먼저 큰누님께서 그런 이유로 돌아가시게 되서 유감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까지만 하더라도 수돗물을 먹어도 별 지장이 없었습니다만 요즘에는 저희 집조차도 평소에 먹는 물을 거의 사서 마시고 있습니다. 이 사정은 현재 낡은 상수도 배관자체를 새로 교체하지 않으면 쭉 이어질것 같구요.

      어짜피 정치가들이야..
      알아서 좋은 물을 챙겨먹고 댕길테니 그런거에 관심이나 있겠습니까?
      지배가 빵빵하니 남들 배고픈거 모르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말씀대로 이러한 행태가 정치가뿐만 아니라 우리 식생활 전반에 퍼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봅니다. 같은 3500원짜리 육개장도 맛나게 만들어 파는 곳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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